(2003)에는 윤명로가 1980년대 <얼레짓> 시리즈에서 보여준 바람에 날리는 대잎 같은 유려한 선들과, 대지의 기운을 분출하던 <익명의 땅> 시리즈에서 선보인 거침없는 붓질이 절묘하게 혼합되어 있다. 속도감 있는 붓 터치로, 때로는 격하게 꺾이며 매듭을 형성하는 붓의 흐름을 볼 수 있으며, 도도하게 굽이쳐 흐르는 물길처럼 화폭에 번지듯 스미는 철가루의 표현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추상적 운율을 보여준다. 작가의 정신에서 흘러나와 손의 표현으로 연결되는 자유로운 필선은 화면을 따라 흐르고, 꺾이고, 밀어내고, 당기고, 지워내는 과정을 통해 구불구불 역동적인 선의 실루엣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