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은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작품 속 판자촌을 연상케 하는 낡은 집은 이내 무너질 듯한 불안감과 삶의 흔적만 남아있는 공허함을 내재하고 있다. 고명근은 이 집을 카메라로 찍어 여러 장의 OHP 필름에 인화한 뒤 아크릴판에 인두로 붙였다. 투명한 사진과 아크릴판이 결합하면서 본래의 공간과는 다른 새로운 구조의 공간을 만들었다. 재료의 투명한 성질로 인해 반복되고 겹쳐진 이미지는 표면과 내부의 구분을 무너트리고, 실체적 구조물이면서 동시에 환영적인 진공 상태의 조각으로 탈바꿈된다. 또한 여러 각도에서 촬영된 이미지는 실제 건축물을 재현하기보다 작가에 의해 새롭게 구성되면서 실재하지만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보이게 된다.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공간과 건축 구조물은 관람자로 하여금 능동적인 시선을 갖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고명근은 물질적인 세계와 비물질적인 의식의 통로로서 시각이 지닌 가능성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