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1.5cm
한국화
1989
천경자는 한국 채색화의 독자적인 회화양식을 창출한 화가이다. 천경자의 회화는 채색화가 대표적이지만 이외에도 기행회화, 수묵담채화, 삽화, 드로잉 등의 작품들도 많이 남아있다. 1969년부터는 30여 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기행회화는 해외여행에서 느낀 감흥과 순간을 포착하여 스케치한 후 채색한 그림들로, 해외여행을 통해 이루어낸 천경자 회화의 독립 장르이다. 1969년부터 1974년까지의 기행 스케치화는 여행지에서 빠르게 펜이나 연필로 그린 후 수성물감을 사용하여 엷게 채색했다. 1969년 남태평양 군도와 유럽에서 그린 기행회화는 빠르게 펜이나 연필로 그린 후 엷게 채색한 선묘 중심의 데생력이 돋보인다. 1974년 아프리카 기행부터는 원시적인 미감을 반영하여 스케치 선묘 위에 과슈로 채색하였고, 기행회화는 선명도 높은 원색적인 화면으로 변모되었다. 기행 초기에는 현장 스케치화들이 많은 반면 여행이 거듭될수록 화려한 색감과 환상적인 화면구성이 돋보이는 완성도 높은 채색화로 고착되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천경자는 기행회화를 단순히 기록화의 개념에서 벗어나 독특하고 신비한 담긴 화면을 창출해냈으며, 채색화의 독립된 장르로 완성시켰다. <자마이카의 여인곡예사>(1989)는 이국적 풍정과 극적인 상상력으로 변용시킨 여성인물화이다. 천경자는 1989년과 1993년에 카리브해 연안, 자메이카로 스케치 여행을 다녀왔다. 열대나무와 앤수리엄, 히비스커스 꽃을 배경으로 표범무늬 옷을 입고 앉아있는 여인의 모습에서 천경자 자화상 <알라만다의 그늘Ⅱ>(1985)가 연상된다. 화면은 평면화, 단순화된 듯 보이지만 색의 중첩에 의한 균질한 붓터치, 톤을 바꿔가며 겹겹이 쌓아 올린 색면은 음영효과와 깊이감을 부여한다. 눈동자와 길게 늘어트린 머리카락에는 금분이 선명하게 채색되어 강렬한 마녀이미지를 강조한다. 마치 입체 화장을 한 것 같은 얼굴은 윤곽이 강조되어 인위적으로 보이며, 코끝은 한층 더 동그랗게 도드라진 모습이다. 천경자는 1980년대 중반이후 이국 여인의 얼굴과 눈매는 사실적인 표현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초월적인 여인상으로 규정짓고 정형화시켰다. 보편적인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이목구비를 지나치게 과장했다. 이러한 여인상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천경자 여성인물화에서 정형화되는 표현이며, 회화적으로 강조되는 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