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12cm
한국화
연도미상
천경자는 전통 채색화의 독자적인 회화양식을 창출한 화가이다. 그는 형식적 전통주의 한계에서 벗어나 채색을 고수하면서도 다양한 조형실험으로 개성적인 화법을 구현하였다. 이 과정에서 유화기법을 동양화 재료에 적용시켰고 색의 중첩에 의한 균질한 화면을 연출함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채색화법을 만들었다. 천경자 회화세계의 의미는 채색화의 명맥을 이어왔다는 점보다 독자적인 해석에 의한 인물의 창조에 있다 . 졸업 후 섬세한 묘사 위주의 사실적 화풍은 1950년대 전반기부터 천경자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투영한 형태와 색채의 상징화가 이루어지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 작품에 자전적 요소가 두드러지기 시작하면서 화려한 꽃으로 둘러싸인 가족과 여인을 소재로 작품을 그렸다. ‘꽃과 여인’이라는 특정 소재가 등장했고 자유로운 구도와 환상적인 화면으로 전환되었으며, 1970년대 초반 무렵부터 초상화 형식의 여성인물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973년작 <길례언니>를 기점으로 동공을 하얗게 칠하고 허공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우수에 가득 찬 여성인물화가 양식화되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천경자는 ‘자전적 여인상’, ‘초월적 여인상’으로 주제를 설정하고 작품의 상징성을 도모하였다. 천경자 회화의 상징성은 자신의 삶에 기인한 고독과 한, 내면세계를 표출한 것에서 비롯된다. 천경자 여인상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부분은 눈동자이며, 작가는 눈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전달하고자 했다. 1980년대부터 대부분의 자전적 여인상은 이국적 소재와 도상이 화면에 재구성되면서, 작가 자신의 삶을 투영시킨 상징이 되었다. 이후 고대 이집트 문명의 내세관을 모티프로 구현되기 시작한 금빛 눈동자와 초월적인 여인상은 1990년대까지 지속된 천경자 회화의 조형언어로 고착되었다. <엔자>(연도미상)는 이국 여인을 소재로 그린 여성인물화이다. 천경자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신디’, ‘엔자’ 등의 특정 인물을 작품에 등장시켰다. 작품의 배경은 풍경적 요소보다는 실내로 한정되며 애완용 개나 카드 등이 여인과 함께 있다. 엽서크기의 작은 화폭에 여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그린 그림이 많다. 화면에서 여인은 입술을 꾹 다물고 어딘가를 향해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 화려한 원색 무늬 스카프와 귀걸이는 장식적인 느낌을 강조해 준다. 천경자는 이국 여인의 얼굴을 정형화시켜 표현했는데, 이목구비를 지나치게 과장하여 눈두덩에 적, 녹, 청색 같은 강렬한 원색을 겹겹이 채색하였고 코를 크고 넓적하게 강조했다. 여인이 정면, 측면 또는 반측면을 취하는 것과 상관없이 금분을 가득 채운 눈동자는 정면을 향해있으며 눈꺼풀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과장되어있다. 마치 입체 화장을 한 것 같은 얼굴은 뚜렷한 음영 표현으로 윤곽이 강조되어 인위적으로 보인다. 이 같은 표현은 천경자가 ‘아름다운 여자’하면 떠올리던 동네 미친 여자들이거나, 평소 화장하기를 좋아했던 화가 자신의 모습과 동일시된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채색화와 기행회화의 구분 없이 천경자 여성인물화에서 정형화된 표현이며 회화적으로 강조되는 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