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27.2cm
한국화
1979
천경자는 한국 채색화의 독자적인 회화양식을 창출한 화가이다. 천경자의 회화는 채색화가 대표적이지만 이외에도 기행회화, 수묵담채화, 삽화, 드로잉 등의 작품들도 많이 남아있다. 1969년부터는 30여 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기행회화는 해외여행에서 느낀 감흥과 순간을 포착하여 스케치한 후 채색한 그림들로, 해외여행을 통해 이루어낸 천경자 회화의 독립 장르이다. 그는 1979년 인도와 중남미 기행부터 귀국 후에 치밀하고 견고한 채색작업을 거쳐서 기행회화를 완성시켰다. 여행지에서 깊이 새겨진 이미지들을 벗겨내고 화면에 배치하는 과정을 통해 색채는 보다 깊어지고 선명해졌다. 이로써 기행 초기에는 현장 스케치화들이 많은 반면 여행이 거듭될수록 화려한 색감과 환상적인 화면구성이 돋보이는 완성도 높은 채색화로 고착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천경자는 기행회화를 단순히 기록화로 보는 개념에서 벗어나 독특하고 신비한 화면을 창출해냈으며, 채색화의 독립된 장르로 완성시켰다. <구스코>(1979)는 언덕에서 풀을 뜯고 있는 라마를 그린 작품이다. 쿠스코는 잉카문명의 발상지였고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다. 숲이 우거진 언덕과 산기슭은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언덕 위에는 고운 직물을 팔고 있는 페루 여인들이 앉아 있고, 그 주위에는 라마가 떼를 지어 서 있다. 라마는 멀리서 보면 염소의 모습이지만 낙타 얼굴을 닮았다. 기행 스케치는 색채 중심으로 변모되었다. 채색이 짙어지면서 같은 계열의 색을 겹쳐 칠하는 방식으로 기법이 변화되었는데 라마의 털, 풀밭 같은 표현에서 확인된다. 사물의 세부묘사가 색채에 의해 이루지고 있으며, 색의 중첩에 의해 깊이감을 주고 있다. 채색방식의 변화는 대상의 선명한 형태감 강조와 함께 이전보다 더욱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상작업을 예고한다. 귀국 후에 채색작업이 이루어지면서 기행회화가 현장스케치에서 채색화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