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5.5cm
한국화
1983
천경자는 한국 채색화의 독자적인 회화양식을 창출한 화가이다. 천경자의 회화는 채색화가 대표적이지만 이외에도 기행회화, 수묵담채화, 삽화, 드로잉 등의 작품들도 많이 남아있다. 1969년부터는 30여 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기행회화는 해외여행에서 느낀 감흥과 순간을 포착하여 스케치한 후 채색한 그림들로, 해외여행을 통해 이루어낸 천경자 회화의 독립 장르이다. 천경자는 1980년대 들어서면서 문학과 영화예술의 현장을 찾았다. 그가 학생시절부터 가졌던 남다른 취미는 문학작품과 영화를 즐기는 것이었다. 영화, 연극, 유행가, 춤은 세월이 흐를수록 취미를 넘어선 천경자의 예술적 소양이 되었고, 고독한 삶을 위로 해주는 수단이자 작품의 소재였다. 천경자가 세계적인 문호들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며 남긴 화폭과 수필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드러나는 대목이 종종 발견된다. 끊임없이 인간 본연의 원초적인 원시성을 찾아다니면서도 문명지 유럽과 미국의 문화예술에 심취했던 작가는 섬세한 묘사 위주의 사실적 화풍을 보여주면서도 구도와 색채 변화를 주어 꿈과 사랑, 환상의 세계를 화면에 담아내었다. <헤밍웨이 집 키웨스트>(1983)는 키웨스트 헤밍웨이 집을 그린 작품이다. 천경자는 문학기행에서 중심 소재와 화면구성에 있어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문호들의 집이나 묘지 등과 같은 건물을 소재로 그렸고, 대상의 일부만 포착하여 색채나 구도에 변화를 주기보다 섬세한 묘사 위주의 사실적 화풍을 보여준다. 작은 화폭이 스냅사진을 찍었을 때의 한 장면처럼 여겨진다. 헤밍웨이는 창이 큰 집에서 관리인까지 고용하여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을 기르고 낚시를 즐기면서 소설을 썼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지만 삶은 여유로웠다. 천경자는 기념관이 된 헤밍웨이의 집 정면에서 야자수 사이로 보이는 집을 포착하여 그렸다. 작가는 헤밍웨이를 상징하듯 저택 앞에 두 마리의 고양이를 그려 넣었고 야자수 사이로 보이는 2층 난간에는 여인이 서있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헤밍웨이의 삶처럼 풍요롭기만 하다. 정교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섬세하게 그린 작품으로 전경이 풍기는 인상까지 반영하여 화폭에 옮긴 천경자의 회화적 감각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