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38cm
한국화
1995
천경자는 한국 채색화의 독자적인 회화양식을 창출한 화가이다. 천경자의 회화는 채색화가 대표적이지만 이외에도 기행회화, 수묵담채화, 삽화, 드로잉 등의 작품들도 많이 남아있다. 1969년부터는 30여 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기행회화는 해외여행에서 느낀 감흥과 순간을 포착하여 스케치한 후 채색한 그림들로, 해외여행을 통해 이루어낸 천경자 회화의 독립 장르이다. 그는 1979년 인도와 중남미 기행부터 귀국 후에 치밀하고 견고한 채색작업을 거쳐서 기행회화를 완성시켰다. 여행지에서 깊이 새겨진 이미지들을 벗겨내고 화면에 배치하는 과정을 통해 색채는 보다 깊어지고 선명해졌다. 이로써 기행 초기에는 현장 스케치화들이 많은 반면 여행이 거듭될수록 화려한 색감과 환상적인 화면구성이 돋보이는 완성도 높은 채색화로 고착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천경자는 기행회화를 단순히 기록화로 보는 개념에서 벗어나 독특하고 신비한 화면을 창출해냈으며, 채색화의 독립된 장르로 완성시켰다. <사우스 다코다>(1995)는 러시모어 산에 있는 4명의 미국 대통령 조각상을 그린 작품이다. 러시모어 산에는 자연의 위풍과 인간의 집념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가 상징적으로 새겨져 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부터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까지 거대한 두상이 조각되어 있다. 천경자는 대평원 위에 우뚝 솟아있는 조각상을 클로즈업하여 화면에 담아냈다. 실제로는 조각상이 위치한 높은 고도에서는 식물이 잘 자라지 않지만, 구도를 조정하여 낮은 지대에 자라는 소나무를 전경에 배치했다. 각각의 인물 특징은 사실적으로 표현했지만 화강암 조각의 눈동자 표현에는 천경자식 화법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천경자는 1970년대 중반이후 여성인물화에 금빛 눈동자를 표현하기 시작했고, 동일한 눈빛으로 4명의 대통령들이 세상을 응시하고 있다. 섬세한 묘사 위주의 사실적 화법으로 환상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을 담아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