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1cm
한국화
1987
천경자는 한국 채색화의 독자적인 회화양식을 창출한 화가이다. 천경자의 회화는 채색화가 대표적이지만 이외에도 기행회화, 수묵담채화, 삽화, 드로잉 등의 작품들도 많이 남아있다. 1969년부터는 30여 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기행회화는 해외여행에서 느낀 감흥과 순간을 포착하여 스케치한 후 채색한 그림들로, 해외여행을 통해 이루어낸 천경자 회화의 독립 장르이다. 그는 1979년 인도와 중남미 기행부터 귀국 후에 치밀하고 견고한 채색작업을 거쳐서 기행회화를 완성시켰다. 여행지에서 깊이 새겨진 이미지들을 벗겨내고 화면에 배치하는 과정을 통해 색채는 보다 깊어지고 선명해졌다. 이로써 기행 초기에는 현장 스케치화들이 많은 반면 여행이 거듭될수록 화려한 색감과 환상적인 화면구성이 돋보이는 완성도 높은 채색화로 고착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천경자는 기행회화를 단순히 기록화로 보는 개념에서 벗어나 독특하고 신비한 화면을 창출해냈으며, 채색화의 독립된 장르로 완성시켰다. <모뉴멘트 벨리>(1987)는 1987년 천경자가 막내아들과 함께한 두 번째 미국 남서부지역 여행에서 그린 작품이다. 모뉴먼트 밸리는 메사(measa)라는 테이블형 대지가 침식되어 생긴 뷰트(butte)라는 바위산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마치 기념비가 줄지어 있는 경관을 나타내고 있는 것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천경자는 끝없이 펼쳐진 붉은 사암산과 광활한 대지를 클로즈업하여 화면에 담아냈다. 내리쬐는 햇빛 아래 펼쳐진 미지의 적갈색 탁상대지와 지평선은 적막하기 그지없다. 사암으로 뒤덮인 탁상대지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한 마리 개와 노란 꽃들은 적막함을 위로 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화면 중앙에 두 쌍의 ‘미튼 뷰트( Mitten Buttes)’와 오른쪽 ‘메릭 뷰트(Merrick butte)’는 깎여내린 바위의 형태를 같은 계열의 색을 겹쳐 칠하는 방식으로 세부묘사를 했다. 단순화된 듯 보이지만 색의 중첩에 의해 깊이감을 주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붉은 탁상대지는 시선의 흐름에 따라 색채 변화를 주었다.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경관을 천경자의 인상에 담긴 심미적 색채 조합으로 화면에 변화를 주고 있다. 천경자의 심미적 인상을 표현한 작품으로 대자연의 신비와 환상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