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0cm
한국화
1987
천경자는 한국 채색화의 독자적인 회화양식을 창출한 화가이다. 천경자의 회화는 채색화가 대표적이지만 이외에도 기행회화, 수묵담채화, 삽화, 드로잉 등의 작품들도 많이 남아있다. 1969년부터는 30여 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기행회화는 해외여행에서 느낀 감흥과 순간을 포착하여 스케치한 후 채색한 그림들로, 해외여행을 통해 이루어낸 천경자 회화의 독립 장르이다. 천경자는 1980년대 들어서면서 문학과 영화예술의 현장을 찾았다. 그가 학생시절부터 가졌던 남다른 취미는 문학작품과 영화를 즐기는 것이었다. 영화, 연극, 유행가, 춤은 세월이 흐를수록 취미를 넘어선 천경자의 예술적 소양이 되었고, 고독한 삶을 위로 해주는 수단이자 작품의 소재였다. 천경자가 세계적인 문호들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며 남긴 화폭과 수필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드러나는 대목이 종종 발견된다. 끊임없이 인간 본연의 원초적인 원시성을 찾아다니면서도 문명지 유럽과 미국의 문화예술에 심취했던 작가는 섬세한 묘사 위주의 사실적 화풍을 보여주면서도 구도와 색채 변화를 주어 꿈과 사랑, 환상의 세계를 화면에 담아내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87)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배경이 된 뉴올리언스에서 그린 작품이다. 천경자는 1987년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과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뉴올리언스를 여행했다.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성격을 갖고 있다. 미국이 독립되기 전 스페인과 프랑스 같은 유럽 강국이 거쳐 갔던 지역이기 때문에 유럽 문화가 남아있는 곳이다. 작가가 그린 스트릿카는 1835년 운행을 시작한 뉴올리언스의 대중교통 수단이다. 작품 제목에서 ‘욕망’은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첫 장면 대사이자 스트릿카의 노선명이기도 하다. 화면 중심에는 가장 오래된 노선인 세인트 찰스 전차가 가로수와 유럽풍의 집들이 있는 거리를 운행하고 있다. 각각의 소재들은 사실적으로 그렸지만 분홍빛 구름, 얼기설기 노란빛으로 표현한 나무 등에서 몽환적 분위기가 연출된다. 이 같은 구성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천경자가 영화예술의 현장을 그린 스케치는 중심 소재와 화면구성에서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대상의 일부를 포착하여 섬세한 묘사 위주의 사실적 화풍을 보여주면서도 몇몇 소재의 색채에 변화를 주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