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40cm
한국화
1984
천경자는 한국 채색화의 독자적인 회화양식을 창출한 화가이다. 천경자의 회화는 채색화가 대표적이지만 이외에도 기행회화, 수묵담채화, 삽화, 드로잉 등의 작품들도 많이 남아있다. 1969년부터는 30여 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기행회화는 해외여행에서 느낀 감흥과 순간을 포착하여 스케치한 후 채색한 그림들로, 해외여행을 통해 이루어낸 천경자 회화의 독립 장르이다. 1969년부터 1974년까지의 기행 스케치화는 여행지에서 빠르게 펜이나 연필로 그린 후 수성물감을 사용하여 엷게 채색했다. 1969년 남태평양 군도와 유럽에서 그린 기행회화는 빠르게 펜이나 연필로 그린 후 엷게 채색한 선묘 중심의 데생력이 돋보인다. 1974년 아프리카 기행부터는 원시적인 미감을 반영하여 스케치 선묘 위에 과슈로 채색하였고, 기행회화는 선명도 높은 원색적인 화면으로 변모되었다. 기행 초기에는 현장 스케치화들이 많은 반면 여행이 거듭될수록 화려한 색감과 환상적인 화면구성이 돋보이는 완성도 높은 채색화로 고착되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천경자는 기행회화를 단순히 기록화의 개념에서 벗어나 독특하고 신비한 담긴 화면을 창출해냈으며, 채색화의 독립된 장르로 완성시켰다. <겨울후지>(1984)는 눈 덮인 후지산을 소재로 그린 작품이다. 후지산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정상부근에는 1년 내내 눈이 쌓여있다. 주위에 큰 산이 없는 단독 봉우리라서 먼 지역에서도 쉽게 관망된다. 작가는 전경에 펼쳐진 광경을 과감하게 생략함으로써 우뚝 솟은 후지산의 산세를 강조했다. 산 정상에 걸쳐진 구름부터 산기슭 아래로 연결된 산세는 시야를 확장시킨다. 화면은 평면화, 단순화된 듯 보이지만 색의 중첩에 의한 균질한 붓터치, 톤을 바꿔가며 겹겹이 쌓아 올린 색면은 음영효과와 깊이감을 부여한다. 후지산을 그린 동일 구도의 작품이 1점 더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