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27cm
한국화
1951
천경자는 한국 채색화의 독자적인 회화양식을 창출한 화가이다. 천경자의 회화는 채색화가 대표적이지만 이외에도 기행회화, 수묵담채화, 삽화, 드로잉 등의 작품들도 많이 남아있다. 그는 채색화를 고수하면서도 형식적 전통주의 한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조형실험으로 개성적인 화법을 구현했다. 천경자는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그리는 그림을 좋아했다.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재학시절 모델을 직접 보고 관찰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꽃가지에 나 있는 잔털까지 섬세하게 사생하는 법을 습득했다. 그림을 그릴 때에는 자세히 관찰하고 스케치한 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구상했으며, 채색화를 그릴 때에는 스케치한 도상들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각각의 소재, 도상들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화면을 만들었다. 그리고 작품의 화려한 색감은 섬세한 색채배열에서 시작된다. 스케치에는 색깔에 대한 메모가 남아있어서 철저하게 계획된 색채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스케치들은 작품을 그리기 이전 천경자의 습작 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가 된다. <뱀 스케치>(1951)는 채색화 <생태>(1951)를 구성하기 위한 스케치이다. 뱀을 소재로 한 그림은 어린 시절부터 겪은 천경자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1949년 첫 번째 서울 개인전을 마치고 광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떠올랐던 환상-햇빛에 꽃비늘을 반짝이며 날쌔게 향기 물씬한 찔레꽃을 스쳐가는 두 마리의 실뱀-을 떠올리며 광주역 앞에 있는 뱀집에 날마다 찾아가 뱀을 스케치했다. 어느 날 더욱 능률적으로 스케치하기 위해 유리상자 속에 수십 마리의 뱀을 넣고 관찰하며 스케치를 남겼다. <뱀 스케치>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뱀의 여러 동작들을 포착하여 그린 천경자의 데생력과 순발력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