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5cm
한국화
연도미상
천경자는 한국 채색화의 독자적인 회화양식을 창출한 화가이다. 천경자의 회화는 채색화가 대표적이지만 이외에도 기행회화, 수묵담채화, 삽화, 드로잉 등의 작품들도 많이 남아있다. 그는 채색화를 고수하면서도 형식적 전통주의 한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조형실험으로 개성적인 화법을 구현했다. 천경자는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그리는 그림을 좋아했다.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재학시절 모델을 직접 보고 관찰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꽃가지에 나 있는 잔털까지 섬세하게 사생하는 법을 습득했다. 그림을 그릴 때에는 자세히 관찰하고 스케치한 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구상했으며, 채색화를 그릴 때에는 스케치한 도상들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각각의 소재, 도상들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화면을 만들었다. 그리고 작품의 화려한 색감은 섬세한 색채배열에서 시작된다. 스케치에는 색깔에 대한 메모가 남아있어서 철저하게 계획된 색채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스케치들은 작품을 그리기 이전 천경자의 습작 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가 된다. <누드 Ⅰ, Ⅱ, Ⅲ, Ⅳ, Ⅴ, Ⅵ, Ⅶ, Ⅷ>(연도미상)는 1969년 파리 아카데미 고에스에서 그린 누드 크로키로 추정된다. 천경자가 뉴욕을 거쳐 파리에 와서 느낀 것은 동양화 재료가 가진 표현의 한계점이었다. 정신은 동양적인 면을 추구하되 재료만은 편리한 유화재료를 쓸 필요를 절실하게 깨달은 작가는 파리에서 유화를 배우고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오전에는 호텔에서 동양화 재료로 그림을 그렸고, 오후에 몽파르나스의 아카데미 고에스에 가서 유화를 배웠다. 귀국 후 천경자는 파리에서 가지고 온 5점의 누드 유화와 1백여 장의 누드 크로키가 여행지에서의 즐거운 수확 중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다양한 포즈의 누드 크로키는 선에 힘이 있고 인체의 골격과 근육의 흐름이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골격의 특징을 순간적으로 정확히 포착하는 천경자의 데생력과 필력은 누드 크로키 선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동경유학 시절부터 관찰을 바탕으로 세밀하게 묘사하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천경자는 백인 여자의 나체를 그리는 것이 처음이었지만 감동을 느끼지 못했고, 서울로 돌아가서 자신의 스타일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