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41cm
한국화
연도미상
천경자는 한국 채색화의 독자적인 회화양식을 창출한 화가이다. 천경자의 회화는 채색화가 대표적이지만 이외에도 기행회화, 수묵담채화, 삽화, 드로잉 등의 작품들도 많이 남아있다. 그는 채색화를 고수하면서도 형식적 전통주의 한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조형실험으로 개성적인 화법을 구현했다. 천경자는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그리는 그림을 좋아했다.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재학시절 모델을 직접 보고 관찰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꽃가지에 나 있는 잔털까지 섬세하게 사생하는 법을 습득했다. 그림을 그릴 때에는 자세히 관찰하고 스케치한 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구상했으며, 채색화를 그릴 때에는 스케치한 도상들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각각의 소재, 도상들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화면을 만들었다. 그리고 작품의 화려한 색감은 섬세한 색채배열에서 시작된다. 스케치에는 색깔에 대한 메모가 남아있어서 철저하게 계획된 색채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스케치들은 작품을 그리기 이전 천경자의 습작 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가 된다. <캐나다 서커스 Ⅰ, Ⅱ> (연도미상)는 서커스 장면을 그린 스케치화이다. 천경자는 어린 시절 마을에서 오는 울려 퍼지는 창을 듣고 자라며 곡마단과 서커스를 동경해왔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곡예 하는 소녀가 눈부시고 황홀해 보였고 곡마단의 소녀가 되고 싶었다. 서커스 구경은 세 번뿐이었지만 천경자 마음속의 서커스 소녀는 영혼의 향수로 자리 잡고 있었다. 세계 어느 지역을 여행하든지 공연이 펼쳐지는 곳을 찾아가서 스케치를 했다. 천경자가 뉴욕에서 처음 본 서커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무대였다. 곡예는 세 곳으로 나누어 펼쳐지고 있었고 시선을 어느 한곳에 둘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웅장했다. 최고의 서커스를 관람했지만 작가는 오랫동안 갖고 있던 모든 공상과 꿈이 사라진 것 같은 허탈감을 느꼈다. 서커스의 규모에 압도당했고 미국 공연 정서에 감흥 받지 못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듯 움직이는 곡예사, 기타를 들고 있는 연주단들, 재롱을 피우며 공연하는 피에로 무리 등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갖가지 장면을 하나의 화면에 스케치했다. 곡예사의 빠른 움직임을 포착하여 역동적이면서 현란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각각의 동세를 빠르게 포착하고 조화롭게 구성하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 천경자의 조형감각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