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6×69.3
드로잉&판화
1984
<여기를 보세요 하나, 둘, 셋>(1984)은 원작 포토콜라주를 스튜디오에서 포지티브 필름으로 촬영한 뒤에 옵셋 프린트한 리프로덕션 원본이다. 발랄하고 밝은 색채의 옷과 표정을 한 십대 소녀들과 구한말 의병 죄수의 초췌하고 쇠락한 모습이 각각 원색과 흑백으로 대비된 작품이다. 의병은 저항적이었으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과거를 상징하고 흑백으로 처리된 모습은 시간의 흐름 속에 표백되어 버린 의병들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반면에 광고라는 가상의 공간에 둘러싸인 발랄한 소녀들은 소비문화의 신기루에 경도된 산업화 이후 현 문화적 상태를 의인화하고 있다. 작가는 의병과 소녀의 이미지를 병치시킴으로써 한국 근현대사에서 조선인이 한국인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문화적 단절과 불연속성을 독창적으로 재현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