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47.8
드로잉&판화
1992
<풍요와 빈곤 12-1>(1992)은 1980년대 국내의 부패한 정치상황을 풍자해온 박불똥이 1990년대에 들어면서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던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만능, 소비주의에 좌우되는 사회 현상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풍곤과 빈요’라는 언어적 유희를 사용한 작품 제목처럼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서민들의 삶은 그야말로 ‘곤궁함이 풍성하고, 빈함으로 가득하다.’ 자본사회의 상징인 햄버거는 성적 매력을 풍기는 여성의 두 다리를 감싸고 있고, 당당하게 가슴을 펼친 채 허리를 받친 두 손과 팔꿈치 사이로 러시아 혁명가이자 공산화된 소련의 첫 국가수석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의 놀란 표정이 보인다. 반대편에는 미국의 팝스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눈이 세상을 쏘아본다. 1991년 말 거대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이 붕괴되면서 냉전 이데올로기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당당한 모습의 자본주의 사이로 보이는 두려움에 찬 레닌의 시선은 냉전시대의 종말 이후 물질자본주의가 새로운 패권세력으로 등장하게 된 국제 정세를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