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0cm
회화
1983
<맥잡기>(1983)는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민화풍으로 그려진 정사각형의 화면 중앙에는 흰 무명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머리에 흰 천을 두른 한 청년이 쭈그리고 앉아있다. 양손에 나뭇가지를 붙잡고 맥잡기를 시도하는 청년의 머리 위로 검은 구름이 가득한 하늘이 있고, 화면 맨 위 중앙에는 ‘건곤(乾坤)’의 괘가 그려져 있다. 『주역』에 의하면 하늘이 아래에 있고, 땅이 위에 있는 ‘지천태(地天態)’를 길하다고 보는데, 그림에는 이와 반대로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아주 좋지 않은 상태의 ‘천지비(天地否)’ 괘가 자리 잡고 있어,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황을 암시한다. 화면 맨 위 오른쪽에는 비천상들이 ‘맥잡기’라고 적힌 하얀색 표지를 들고 있고, 그 왼쪽에는 ‘1894 강요배’라는 서명이 있다. 이는 갑오농민혁명 이후 붕괴된 기층 민중의 삶과 외세 추종의 시대를 전도시키려는 작가의 의도로 짐작된다. 남자 양옆으로 붉은색 깃발의 지방에는 ‘현령제학생부군신위’(顯靈諸學生府君神位)와 ‘토지지신신위’(土地之神神位)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화면 아래에는 할리우드 공상과학영화에 등장할 법한 로봇의 파편들이 널려 있고, 거대한 농민의 모습과 대비되게 외계인이 아주 작게 그려져 있는데, 이는 물질문명의 잔해를 상징한다. 작가는 다양한 도상들의 결합을 통해 급속한 서구화가 가져온 전통문화의 붕괴를 고발하고 강한 현실 극복의지를 표출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