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78cm
회화
1987
<쥐법관의 초상>(1987)은 정의가 왜곡되고 진실이 은폐되었던 한국사회의 기형적이고 암울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작품이 제작된 해인 1987년은 서울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연세대 이한열 최루탄 사망 사건 등이 연이어서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심화된 해로, 박불똥은 초상화 장르를 패러디하여 당대 사회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자 했다. 본래 초상화는 최대한 실제 인물과 유사하게 표현하여 그 인물의 정체성을 전달하는 데 주안점을 두지만, 화면 한 가운데 법관의 얼굴은 제 것이 아닌 여러 사람의 이목구비로 콜라주 되어있어 특정인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다. 오히려 법관의 머릿속을 엄호하고 있는 듯 보이는 무장 군인과 법전 대신 조언(ADVICE)라고 적힌 책을 끼고 있는 모습, 법복(法服) 대신 포르노그래피를 연상시키는 몸, 관능적인 여성의 것으로 대체된 팔과 손, 판사봉 대신 술잔이 들려있는 손이 이 인물에 대한 정체성을 말해준다. 준엄한 법의 심판을 내리는 이상적인 법관의 상과 대조를 이루는 욕망과 탐욕으로 휘감긴 법관의 초상은 당시 기득권층의 부도덕함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