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0×27cm
공예
1989
<김치담기>(1989)는 자신의 삶의 한 장면을 흙으로 빚어 작은 공간 속에 연출한 작업으로, 마치 무대와 같은 미장센을 보여준다. 김치를 담는다는 행위는 성인이 된 한국 여성이라면 대부분 경험해 본 일이다. 전통문화에서 김장은 여러 명의 마을 구성원들이 품앗이를 했지만, 작품 속의 여인은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혼자 묵묵히 무를 자르고 있다. 작은 창문이 나있는 벽과 사방에는 여인이 던진 배추와 무가 여지저기에 붙어있거나 널브러져 있다. “생활의 작은 반란을 꿈꿔본다. 자고 나면 해가 뜨고, 깨고 보면 해가 지고 그렇게 상식의 틀 속에서 우리의 하루하루가 가고 있다. 인생이 가고 있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한애규의 작업은 가정 안에서 여성의 역할과 위치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만 이를 분노나 희생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일탈을 꿈꾸는 주체적인 자의식을 가진 여인이자 집안을 관장하는 여성으로 묘사된다.